HIH 보험의 파산   (List)

HIH 보험 그룹이 40억불에 달하는 채무를 안고 쿵 쓸어 지며 발생시킨 해일이 천파만파를 일으키며 호주 사회 전역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HIH 보험가입자들과 소액 주주들은 물론, 그 회사의 보험을 믿고 건축 일을 맡겼다가 건축업자가 파산했으나 그에 따른 피해를 보상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건축보증 보험이 무효화되어 버리고 말아서 새 일을 수주하지 못하고 있는 건축업자들, 재정보험을 믿고 벤처 사업에 돈을 대어 주었다가 물린 은행들, 업무과실 손해배상 보험이 사라져 버리고 말아 불안한 변호사들, 회계감사를 하면서도 파산위험을 감지 못했다는 책임추궁으로 자리가 불편한 회계법인, HIH에 의무보험 사업을 허락해 줌으로써 주 재정에 수 억 불의 구멍이 나게 만들어 체면상한 정치인들, HIH로부터 정치 헌금을 많이 받아 특혜 의혹에 시달리고 있는 자유당, 4억불의 추가 세금을 부담해야 하는 경쟁 보험회사들과 그에 따른 보험료 인상을 감내해야 할 일반 서민들, 그리고 수억 불에 달하는 정부 구호자금으로 구멍난 재정을 분담해야 할 납세자들 등, 직접간접적으로 그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을 것 같다.

HIH 보험은 1968년, 그 당시 31세이던 레이 윌리엄스가 그의 동료 마이클 페인과 함께 시드니에서 설립한 회사로, 1992년 증권거래소에 상장되었다. 1999/2000 회계자료에 따르면, 작년 6월 30일 현재 총자산이 83억 2천 7백 만불로 총부채를 제하고 남은 순자산이 9억 3천 9백만 불이고, 법인세 공제후 순수익이 1천 8백만 불로 보고된 회사였다. 장부상의 수치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지금 주 정부와 연방정부가 떠 안기로 한 11억 불을 거의 커버할 순 자산이 남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지난 몇 달 사이에 그 많은 재산을 탕진한 것일까?

HIH를 가까이서 지켜 본 사람들의 얘기는 그렇지 않다. 이미 수년 전부터 문제가 있어 왔다는 것이다. 실제 HIH의 주가 변동 추이를 보면, 97년 말 이래 계속 내리막길을 걸어 온 것이 보인다. 97년 중반 당시 3불 50전대에 이르던 주가가 거의 매달 조금씩 조금씩 하락해 오다가 작년 9월 이후 거의 무가치로 폭락하고, 결국 지난 3월 15일에는 회사가 임시 법정청산인의 손으로 넘어 감으로써 휴지조각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증권거래소가 위험을 감지한 것은 올해 초로, HIH에 대해 작년 12월까지 6개월 간의 중간 손익액을 보고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HIH가 그 자료를 제공하지 못하자 3월 1일 주식의 거래를 중단시켰다. 그 후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그 기간 중 발생한 순 손실액이 8억불에 달했다고 한다.

회사가 망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전문성이 없는 분야로 뛰어 들거나, 사업환경이 불리하게 바뀌거나, 아니면 기업주의 사고에 문제가 있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HIH의 경우는, 기업이 망하는 길을 교과서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라고들 얘기한다. 창업자의 독주, 지나친 가격경쟁, 그리고 연이은 오판으로 이미 예고된 파멸이었다는 것이다. 보험업계에서는, 총 보험료 수입의 50% 정도를 보험금으로 지불할 확률을 예상하고 보험계약을 체결하고 보험료를 책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한다. 그러나, HIH의 작년 회계자료를 보면, 총 지급보험료와 영업비용을 합한 액수가 총 보험료 수입보다 96년이래 항상 더 많았다. 위험이 높은 보험들을 수락하고, 화려한 크리스마스 파티에 돈을 물쓰듯하는 등 씀씀이도 커, 보험사업 그 자체만으로는 매년 3천만 불 내지 1억 5천만 불의 손해를 보아 왔던 것이다. 최소한 장부상으로는 최종 순수익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보험료 기금을 투자한 데서 생긴 수익 때문이었다.

보험업은 보험청구 가능성을 가지고 하는 노름이다. 보험회사가 건실하기 위해서는 보험목적의 위험도를 측정하고 보험료를 책정하는데 지극히 이성적이고 보수적이어야 한다. HIH의 부주의한 사업행태는 오동나무 사업의 재정보증을 한 예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경험도 없는 한 사업가가, 오동나무 묘목을 심어 키운 후 목재로 팔 사업을 하기 위해 2천 5백 만 불을 세인트 조지 은행에서 대출 받는 데 5년 내에 상환할 것을 재정보증한 것이 그것이다. 목재사업을 하기로 한 사업가는 매달 2십 만 불에 달하는 은행이자를 갚지 못해 파산했고, 2만 여 오동나무 묘목을 심었던 땅은 잡초만 무성한 황야가 되었다. HIH의 재정보험만 믿고 거금을 대출해 주었던 세인트 조지 은행은 그 돈을 회수 받을 길이 없게 되었다.

 

HIH의 파멸을 몰고 온 가장 큰 판단 착오는, 1998년 골치 덩어리 FAI 보험을 떠 안은 것과 1994년 철수했던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산업재해 보상 보험 시장에 2년 후 다시 뛰어 든 것이었다. FAI 보험의 인수는 영국 보험시장과 캘리포니아 시장에서의 난조로 허덕이고 있는 낙타의 등에 꽂힌 작살이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설립한 FAI보험을 HIH에 판 로드니 애들러는 작살이 아니라 지푸라기였다고 발뺌했다.)

전 국민에게 영향이 가는 사안인 만큼 주 정부와 연방정부의 사후처리 조치도 비교적 신속하고 철저해 보인다. 주 정부는, 주법 상 자동차 등록시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삼자 상해보험과 건축업자가 건물을 신축할 때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건축 보증보험상의 클레임을 부담하기 위해, 연 6천 9백 만불 씩 추가 세금을 보험회사들에게 부과하여 4억 불을 조성하는 등 전체 6억불을 기여하기로 했다. 한편, 연방정부도 5억불을 기여하여 호주시민권자 또는 영주권자에 한해, 수입보장보험, 개인상해보험, 그리고 주 거주 주택의 전소에 따른 건물보험의 청구와 비영리 단체가 하는 보험청구에 대해서는 전액을 지불하기로 하고, 기타 보험의 클레임에 대해서도 가계 과세소득이 77,234불 (부양자녀 1명 당 3,139불씩 추가) 미만인 경우는 클레임 액수에 상관없이 90%를, 그리고 소득이 그 이상인 경우는 클레임 액수가 가계 과세소득의 10%를 넘을 때만 청구한 액수의 90%를 지급하기로 했다. (이러한 정부의 구호조치는 보험금을 청구할 사건이 6월 10일 자정 이전에 발생한 경우에만 해당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고 그 책임은 어디에 있으며, 감독기관은 사태가 그렇게 악화될 때까지 뭘 하고 있었는가. 또한, 앞으로 그러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가를 조사하기 위해, 연방정부는 한국의 특검제라 할 수 있는 로얄 커미션을 올해 중에 열기로 했다. 앞으로 또 어떤 기상천외한 사업얘기들이 쏟아져 나올 지 궁금해진다.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