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정부 예산   (List)

"교활하고 인색하다"는 비판의 소리에 크게 충격을 받은 것일까? 지난 화요일 저녁 발표된 연방정부의 새 회계연도 예산안은 그러한 불만을 가장 강하게 표출했던 노인층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2백 2십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 노인연금 수혜자들에게는 300불을 일시불 보너스로 지급하고, 자신이 저축한 돈으로 은퇴생활을 영위하는 65세 이상 (여자의 경우는 61.5세) 자급 은퇴자들에 대해서는 면세소득 상한선을 독신자의 경우 2 만불, 부부의 경우 32,612불로 크게 올렸다. 특히, 자급 은퇴자들에 대해서는, 약값 및 전화요금 등의 정부보조 혜택이 주어지는 경로 건강카드를 발급 받을 수 있는 연간 소득 상한선도 독신자의 경우 5 만불, 부부의 경우 8만 불로 상향조정하여 보다 많은 자급 은퇴자들이 그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했다.

퇴직금에서 발생하는 고정된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자급 은퇴자들에게는, GST 도입에 따른 생활비 상승과 최근의 이자율 인하에 따른 이자소득 감소로 실직소득이 크게 감소한 것이 그 불만의 원인이었으나, 이번 예산상의 조치로 자신들의 소득에 대해 부과되는 세금도 줄어들고 경로 건강카드를 발급 받을 가능성도 커 지게 되어, 이 번 예산에서 가장 덕을 본 층으로 평가되고 있다.

사업자들도 이번 예산으로 덕을 본 그룹이다. 법인세가 34%에서 30%로 낮아지고, 사업용으로 상한가 이내의 새 차를 구입할 경우 그에 부과되는 GST 전액을 국세청에 납부해야 할 GST 채무에서 당장 상계할 수 있게 되었다. 증권거래시 부과되는 인지세가 폐지되어 증권거래 비용이 줄어들었고, 연료에 부과되는 연료세도 리터 당 1.5 센트씩 낮아 져, 휘발유 값도 좀 싸질 전망이다. 은행계좌에 돈을 입금할 때마다 부과되던 입금세도 폐지되어 매월 대출금을 상환해야 하는 사람들도 조금은 덕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이 번 예산에서 찬밥을 대접받았다고 느끼는 이들의 볼멘 소리도 크다. 가장 큰 실망의 목소리는 65세에 미치지 못하는 자급 은퇴자들로부터 들려 오고 있다. 노인연금 대상연령(남자 65세, 여자 61.5세)보다 젊을 경우는, 은퇴하였더라도 이번 예산의 확대된 감세 혜택과 의료혜택을 못 받는 것은 물론 300불의 보너스도 받지 못하니 그럴 만 하다고 하겠다. 특히, 자급 소득이 낮으나 나이 관계로 예산상 수혜대상에서 제외된 65세 미만의 비교적 가난한 자급 은퇴자들의 불만이 가장 크다. GST 영향은 똑 같이 받고 생활 형편이나 나이도 크게 차이 나지 않는데, 누구는 도와 주고 누구는 도와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인 연금수혜자들도 불만이 크다. 그까짓 300불이나 GST 도입당시 지급한 1천 불의 보너스는 비싸 진 생활비를 커버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시드니 모닝 헤럴드지에 게재된 한 독자의 글이 그들의 마음을 잘 그리고 있다.

"오늘 아침 침대에 누워 난 그 300불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다. 80불로 구두 한 켤레 살까? 아냐. 새 주전자나 하나 살까? 아니야. 사치품보다는 필수품을 먼저 사야지. 그래 내 이빨. 치과의사가 280불에 해 준다고 했어. 특별가격이라고? 좋은 사람이야. 아니야, 한꺼번에 다 쓰면 안되지. 어릴 때 아버지가 일 주일 용돈으로 페니 한 닢을 던져 주시면서 늘 하신 말씀이 바로 그거였어. 일년 동안 고루 나누어 써야지. 일 주일에 6불... 참 한심하군. 동네클럽에서 싸구려 끼니 값도 안되잖아? 가스 히터를 조금 더 쓸까? 저녁 식사를 코트를 둘러쓰지 않고도 할 수 있으니 좋겠지... 지난 번 가스비는 하루 당 6센트였지 아마? 모든 게 다 비싸졌어. 그래도 조급해 하진 마, 이 친구야. 느긋하게 생각해. 야아, 거금 300불이라... 어이, 고마워 피터. 고마워 조노."

중산층과 불구자연금 수혜자도 이 번 예산에서 무시당한 그룹이다. 특히, 불구자 연금 수혜자는 상황이 노인연금 수혜자나 크게 다를 게 없는 데도 300불의 보너스도 없다고 볼멘 소리다. 실업률이 앞으로 더 악화될 전망인데도 실업자 수당을 받기는 더 까다로워 졌다. 40세 미만으로 파트타임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지 않으면서 실업기간이 6개월을 넘기면 노역이나 지역봉사활동을 해야 하고, 40세에서 50세 미만인 경우는 지역봉사활동을 해야 한다. 실업수당 받기를 더 귀찮고 힘들게 함으로써 그 유인을 줄이자는 목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의 결과, 정부는 일부 노인층 유권자들의 볼멘 소리는 줄일 수 있겠지만, 그 외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로부터는 "교활하고 인색하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 같다.

호주 연방정부의 연간 예산 규모는 1,600억불 수준으로 국내 총생산(GDP)의 약 22%에 해당한다. 한국정부의 일년 예산 100조원 (GDP 의 16.3%)과, 환율 630원 정도를 고려할 때,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따라서, 1 인당으로 계산해 볼 때 한국예산의 세 배에 해당한다. 호주 정부는 그 거대한 예산의 40%가 넘는 액수를 사회 복지를 위해 쓴다. 이에 비해, 한국예산의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부문은 전 예산의 25%에 해당하는 과학기술 개발, 중소벤처기업 지원 등 경제개발 분야이다. 너무 큰 액수를 사회 복지에 쓰다 보니, 호주의 다른 부문에 대한 지출의 몫은 한국에 비해 조금씩 낮다. 교육비는 7.1% (한국 17.2%), 국방비는 7.6% (한국 17.1%), 그리고 일반 행정비는 5.9% (한국 9.6%)에 해당한다.

올해 중에 있을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예산이다 보니, 그 씀씀이도 크다. 비록 15억불의 통합 재정수지 흑자를 계획하고 있지만, 중앙은행의 잉여금 등을 제외한 세수와 비교할 때 적자에 속한다. 정부가 최근에 들어서는, 96년 집권 후 처음 예산 때 설정해 놓았던 4년 간 250억 불에 달하는 재정흑자를 다 소모하고도 모자랄 정도로 헤프게 재정을 축내고 있어, 노동당은 이번 선거에서 집권하더라도 자신들이 원하는 정책들을 초기 임기 내에 펼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울상이다. 이러한 재정 팽창정책의 영향으로 다음 달 있을 월례회의에서 중앙은행이 이자율을 다시 내릴 확률은 더 줄어들었다. 금융정책까지 더 팽창하면 경기가 과열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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