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계좌 수수료   (List)

호주 은행들의 행실이 마치 물렁한 고무풍선 같다. 이쪽을 누르면 저쪽이 불쑥 나오고, 저쪽을 누르면 이쪽이 불쑥 나오는 모양이 아주 흡사해서 하는 말이다. 각계로부터 빗발치는 비판에 밀리다 못해 연금 수혜자를 위한 낮은 수수료의 특별계좌를 도입하는가 싶더니, 금방 다른 계좌의 수수료를 인상한다. 그런가 하면, 호주에 진출한 외국은행들과 비은행 금융기관들과의 경쟁에 밀려 이자수입의 마진이 줄어들자, 그를 보전하기 위해 각양 각색의 수수료를 부과하고 기회만 나면 그 수수료를 인상해 오고 있다. 연간 개별적으로 수 십억 불에 달하는 순이익에서 한 푼도 양보할 수 없다는 자세다. 은행들의 자율에 맡겨서는 도저히 되지 않을 일이라, 노동당은 이 번 선거에서 이길 경우 은행의 사회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명시하고 강요할 법안을 도입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호주은행들의 계좌수수료는 세계에서 비싸기로 유명하다. 작년 초 영국 은행의 수수료 조사결과에 따르면, 호주인들이 연간 표준 은행계좌의 수수료로 은행에 지불하는 돈이 평균 330불로 캐나다 다음으로 두 번째로 높았다. 영국에서는 일반 계좌의 경우 차월하지 않는 한 어떤 수수료도 부과하지 않고, 프랑스에서도 개인 수표발행은 물론 직불카드(EFTPOS) 이용, 그리고 자동인출기(ATM) 이용까지 모두 무료라 한다. 외국사정이 이렇다 보니, 외국에 진출한 호주은행들이 그 나라 사람들의 호감을 얻기는 당연히 어려울 것이다. 최근 오클랜드 대학에서 행한 뉴질랜드 사람들의 은행 만족도에 관한 연구조사에 의하면, 뉴질랜드에서 영업하고 있는 여러 은행들 중 웨스트팩은행과 ANZ은행에 대한 만족도가 제일 낮았다고 한다.

웨스트팩은행의 경우, 지난 회계연도의 영업수익 62억불 중 39억 불이 이자 수익, 그리고 나머지 23억불이 비이자 수익이었는데, 비이자 수익의 67% 정도가 계좌수수료와 대출 수수료 등으로 거둬들인 수익이었다. 내쇼날은행도 지난 회계연도의 비이자 수익이 총 영업수익의 반이 넘는 65억불이었고, 그 47% 정도가 각종 수수료 수익이었다. 그 전 회계연도와 비교해 볼 때, 이자수익은 5% 줄어 든 반면 비이자 수익은 43%나 늘어났다.

이자 마진의 감소는, 호주은행들이 각종 수수료를 도입하고 그를 인상할 때마다, 거센 비난을 피하기 위해 써 온 전가의 보도였다. 은행이 예금액에 대해 지불해야 하는 예금이자율과 대출금에 대해 부과하는 대출이자율의 차이가 1990년 대 초 4% 수준에서 현재 2.5% 정도 수준으로 떨어 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주은행들의 순이익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수수료등 비이자 수익의 증가가 이자율 마진 감소에 따른 수익의 감소를 보전하고도 크게 남는다는 뜻이다. 이를 고객의 입장에서 달리 말하자면, 이자율 감소에 따른 이익보다는 수수료 인상에 따른 손해가 더 크다는 뜻이다. 호주은행들의 이자수익의 감소는, 낮은 대출이자율과 높은 예금이자율로 고객들의 인기를 모으고 있는 외국은행과 비은행 금융기관들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계좌관리 등 외국은행과 비은행 금융기관들의 경쟁이 심하지 않은 분야에서는, 마음놓고 수수료를 도입하고 인상함으로써 고객들의 부담을 늘여 가고 있는 것이다.

은행계좌 수수료는 매월 일정액씩 부과되는 계좌관리비와 돈을 인출할 때 부과되는 인출수수료로 구성되는데, 계좌의 종류에 따라 수수료와 부과조건이 조금씩 다르다. 예를들어, 웨스트팩은행의 일상 가계계좌인 Classic Account의 경우, 예금잔액이 2천불을 넘지 않으면 매월 5불씩의 계좌관리비가 부과되고, 예금잔액에 상관없이 한 달에 인출횟수가 8번을 넘으면 매 인출 때마다 인출 수수료가 부과된다. 인출수수료는 인출방법에 따라 다른데, 다른 계좌로 자동 이체시키거나 인터넷을 이용해 전화비등을 지불(BPAY)하면 인출건당 25센트, 전화를 이용하면 40센트, 직불카드를 사용하면 50센트, 웨스트팩 자동현금 인출기를 이용하면 65센트, 개인수표를 사용하면 1불, 창구직원을 이용하면 2불 50전씩 부과된다. 웨스트팩은행의 관련기관이 아닌 다른 은행의 자동현금 인출기를 이용하면, 인출횟수가 8번을 넘지 않았더라도 잔액을 체크하거나 인출할 때마다 1불 25센트씩 부과된다. 이 계좌에 지급되는 이자율이 천 불당 일년에 50센트에 불과한데 비해, 일 주일에 직불카드 이용 등 전체 7 번 정도 인출하는 경우 수수료는 거의 200불에 육박한다.

인터넷이나 전화등 일단 시스템만 도입하면 관리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방법을 고객들에게 장려하는 반면, 유지비가 많이 드는 창구거래는 억제함으로써 영업비용을 최대한 줄이자는 속셈이다. 비용만 줄이고 은행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다면 고객들에게도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과 자동 인출기 등을 이용하는 고객의 수가 늘어 갈수록 그 수수료가 점차 인상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젠 누구나 서너 개씩 은행계좌를 가지지 않고는 생활할 수가 없게 되었다. 피할 수 없어 열어 두는 은행계좌에서 만만치 않은 액수가 매월 시나브로 빠져나간다면 정말 답답한 일일 것이다. 앞으로 이 분야에도 주택자금 대출시장에서와 같은 신선한 경쟁의 바람이 불어오길 기대하지만 지금으로선 요원한 일이다. 그때까진, 고객들이 현명해 지는 수밖에 없다. 은행직원이 혹 여러 계좌를 추천하더라도 꼭 필요한 계좌만 열고, 이자율 조건이 좋고 수수료가 거의 없는 외국은행이나 신설은행 등을 활용함으로써 경쟁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계좌의 개수뿐만 아니라 종류도 자신의 목적에 맞게 고르는 것이 쓸데없는 수수료 비용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 계좌에 따라서는 예금잔액이 일정액을 넘으면 월간 계좌관리비가 면제될 수도 있으니, 월 평균잔액이 얼마가 될까를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고, 개인수표, ATM 또는 인터넷의 이용여부도 참작해야 하며, 한 달에 몇 번쯤 계좌를 사용해야 할지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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