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금융권?     (List)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리바이어던 - 은행의 기원은 우습게도 이태리 공원의 벤취다. 무역거래로 돈을 모은 이태리 도시국가의 상인들이 지금의 은행거래에 속하는 금전거래를 공원이나 거리의 벤취에 앉아서 행했기 때문이다. 영어단어 Bank는 Bench를 뜻하는 이태리어 Banco에서 유래된 것으로, 근대적 은행의 효시는 1587년 이태리 베니스에서 설립된 Banco di Rialto였다.

이렇게 시작된 은행업무가 서서히 유럽 전반에 퍼지기 시작하여 호주인들의 조상이라 할 영국에서 보다 은행다운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당시 영국에서는 금 세공인들이 그들의 귀금속을 보관하기 위하여 튼튼한 금고를 갖고 있었는데, 일반인들이 동전이나 귀중품을 거기에 보관해 달라고 부탁하기 시작했다. 금세공인들은 이에 대해 보관 영수증을 발부하고, 사람들은 점차 그 증서를 지폐처럼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이후, 금 세공인들의 이러한 금고는 어음할인과 대출업무의 발달에 따라 현대 상업은행의 모태가 되었다.

호주에서도 유럽인들의 이주와 함께 이러한 상업은행 제도는 곧 바로 도입되었겠지만, 성격이 좀 다른 저축은행이 시작된 것은 1819년 New South Wales Savings Bank의 설립으로부터였다. 상업은행이 상업거래상 발생하는 자금의 대차를 결제하거나 도와 주는 게 그 주업무라면, 저축은행은 서민들의 여유자금을 흡수하여 필요한 사람들이나 기업에 대여하는 일종의 근검 절약형 예금기관이었다. NSW 저축은행은 초기 유형수들의 강제 예금을 관리하는 기능을 주로 하다가 1931년 Commonwealth Savings Bank에 흡수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호주의 금융시장은 1970년대 말까지 정부의 강력한 통제를 받아 왔으나, 그 이후 금융 자율화를 향한 세계적인 추세와 1979년부터 3년에 걸친 호주 금융조사 위원회 조사 보고서(일명 Campbell Report)의 주장을 반영한 정부의 혁신적 금융자율화 조치에 따라 거의 모든 규제적 그물이 걷혀 지게 되었다. 이자율을 규제하는 각종 상하한선의 폐지, 외국은행의 국내업무 인가, 은행과 비은행 금융기관들 간의 업무상 구별완화, 변동 환율제의 도입 등 1980년 대 중반에 완료된 이 금융개혁에 의해 호주 금융시장의 지각이 변동되고 그 패러다임이 변화되었다.

이러한 금융제도의 지각변동에 의해, 소위 제 1 금융권과 제 2 금융권의 구분은 의미가 없게 되었다. "제 2 금융권"이란 용어는, 전형적인 금융기관인 은행과 대비하여 보험회사, 신탁회사, 증권회사, 종합금융회사 등을 일컫는 비공식적인 용어이며 주로 한국의 언론을 통해 보급된 말인데, 교민사회의 일각에선 호주의 대형 은행을 제외한 외국은행과 기타 금융기관을 총괄적으로 묶어 그렇게 부르고 있는 것 같다.

이 용어를 그러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은 중요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 이유는, 앞서 말한 금융개혁의 결과 소위 제 1 금융권과 제 2 금융권의 구분은 의미가 없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금융개혁의 최고 목표는 몇 개 국내 은행에 의해 과점되어 있던 호주 금융시장에 자유경쟁을 도입함으로써 국내 대형은행들의 독점력으로부터 고객들을 보호하고, 그 효율성을 높임으로써 고객들에게 유리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 결과, 현재 호주에는 커먼웰스, 웨스트팩, 내쇼널, Suncorp-Metway, AMP 은행 등 14개 국내 은행 이외에도 호주 현지 법인을 설립한 세계 굴지의 ING은행, 시티뱅크 및 홍콩-상하이 은행 등 12 개 외국은행과 세계 최대의 도이취뱅크, 아사히, 체이스 맨하탄, 중국은행 등 25개 은행의 지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은행들로 하여금 과거 비은행 금융기관에 제한되어 있던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한 대신 비은행 금융기관들도 원래 은행 고유의 업무였던 분야에서 영업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업무분야에 따라 은행과 비은행 금융기관의 구분도 사실상 유야-무야하게 되었다. 상업은행과 저축은행의 구분이 없어진 것은 물론이다.

"제 2 금융권"이라는 이 낡은 용어가, 자유경쟁의 신선한 바람이 불고 있는 호주 금융시장에서 기득권을 잃어 가고 있는 일부 금융기관의 교민 종사자들에 의해 아직도 쓰여지고 있다면 그 뜻이 나쁘게 전달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의 금융제도 하에서 "제 2"라는 말에 함유되어 있는 부정적 의미를 호주의 경쟁 은행 또는 금융기관들에게 연계시킨다는 것은, 자유경쟁과 소비자의 권리가 중요시되고 있는 호주사회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그 뜻과 현실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용어를 오용한다면 위험한 일일 것이다.

호주와 같은 자유경쟁 시장에서는 소비자가 왕이다. 금융업무도 금융서비스의 소비자인 고객이 왕인 것이다. 금융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자유경쟁이 찾아 준 소비자의 권리를 지키고 자신들을 독점 또는 과점의 횡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자유경쟁이 유지되고 확산될 수 있도록 공급자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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